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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든다 혹은 느낀다/책을 읽은 뒤에

[책] 류비셰프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상세보기
다닐 알렉산드로비치 그라닌 지음 | 황소자리 펴냄
매일 8시간 이상을 자고 운동과 산책을 한가로이 즐겼으며 한 해 평균 60여 차례의 공연과 전시를 관람했던 사람.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직장에 다녔고, 동료와 후배들에게 애정 어린 편지를 즐겨쓰던 사람. 구소련 과학자인 류비셰프가 사망한 후 그의 유고 속에서 나온 '시간통계' 노트를 단서로, 생전에 그가 발휘했던 '괴력에 가까운 학문적 열정'과 방대한 성과물들의 비밀을 추적해낸 책. 자기 삶을 통째로 바쳐 '시간'이라


[책]  류비셰프


시간연구가, 시간발굴자 류비셰프의 이야기에 앞서 내 이야기 좀 잠시 하자.
난 어느땐가 부터 일기를 꾸준히 썼왔다.
아마 중학교때 였을 것이다. 내가 좋아했던 가수 이적에게 날마다 팬레터를 쓰는 식으로 일기를 썼다.
글씨는 지금이나 그때나 삐딱빼딱 난리도 아니지만
하드커버 일기장을 한가득 다 채운건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매일 쓰진 않았지만, 쓰는 재미 그리고 읽는 재미 기억하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일기장의 형태는 조금씩 달라진다.
고등학교때에는 친구들과 교환일기도 썼었고, 나 혼자 쓰기도 했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와선 한참동안 일기를 쓰지 않다가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싸이미니홈에 일기를 쓴 것이 400 여개가 넘는다.
그리고 지금은 티스토리에 간간히 써나가고 있다.
날마다 쓰는 것도 아니고 썼다 말았다 꾸준하지도 않았고,
문장호응이나 맞춤법또한 맞지 않을때가 많았겠지.
글의 구성 또한 그저 제멋대로, 소재선택도 언제나 제 멋대로였다.


처음에 일기를 쓰고 읽으면서 과거와 이어진 나의 모습을 찾았다고 해야할까.
과거와 현재에 걸쳐 공존하고 있는 나를 찾고. 현재와 미래에 이어지고 있을 나를 발견하기 위함이었다.
부끄러울 정도로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난 그만큼 시간에 욕심이 많았다.
흘려보내는 이 시간들을 온전히 내 것으로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러기에 늘 일기를 쓰고 나를 기억하고 나를 재생해 내려고 했었다.
물론 세상을 향한 내 작은 독백이 나를 위로함도 있었다.
특히 온라인상의 일기란 더욱더 그렇다.
수억만가지의 웹이라는 거대한 나무에 아주 잔가지 중에 하나가 되는 내 일기는
누군가 스쳐지나가면서 잠깐 눈길을 주기도 하겠지만
결국 날마다 날마다 시간이 누적됨으로 인해 어마어마해진 곁가지를 모두 통째 쳐다보게 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허용하지 않기에, 딱 그만큼만 내 삶을 타인에게 보일 듯 말듯 개방하게 되는 것이다.
그 보일듯 말듯 한 사이에 나의 진실과 거짓이 쏟아져 나온다.
그러다 때론 너무나 부끄럽고 현편없는 마음들-진실-이 일기장에 담겨버린다.
혼자 적었던 일기장이라고 해서 늘 진실만을 이야기 한 것은 아니었다.
일기장엔 언제나 진실과 희망사항이 그때 그때의 상황에 따라 알게 모르게 섞여 있었다.


나를 온전히 보여주고 나를 바라봄.
거울은 거울이되 앞서 말했듯이 희망을 반영할 수 있는 나만의 거울.
말그대로 거울은 현재의 모습밖에 반영되질 않지만
일기란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재생해주는 최고급 성능의 거울인 것이다.
특히나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을때, 그리고 그 사람과 헤어졌을때.
그때의 일기를 읽으면 아직도 눈물이 그렁그렁 해진다.
너와 그렇게 헤어지고 일기장에 '죽어. 죽어버려' 라고 마구 적었던 그 마음들까지 생각이 나는 것이다.
지금 너는 내 옆에 있지만, 나는 이별했던 그때의 나를 기억한다.
나는 너와 함께 있는 동시에 이별하고 있다.
지금은 우리가 함께 하기에 현재 니가 "내 옆에 있음"의 비율이 절대적으로 크지만,
우리가 지금 함께한다 해서 그때의 슬픔이 완전히 사라져 버리는게 아니란 말이다.


아직도 가끔 내가 울 수 밖에 없는 것은
그때 너를 사랑하던 내 마음과 나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는 내 마음을 놓질 못해서일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리와인드를 해보자면 너와 처음 만나서
내 가슴이 언제 니 앞에서 뻥하고 터지지는 건 아닐까 조마조마하게 널 바라보던 나의 모습까지 재생이 된다.
자꾸 자꾸 더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가수 이적을 진정 사모하던 그때까지 말이다. ㅋㅋ


류비셰프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너무 멀리까지 가버린 것 같다.
나와 그의 차이점이라면.
난 게으르고 그는 부지런하고, 난 옷사입는 걸 좋아하고 그는 검소하고
기타등등 너무나 많은 차이가 있지만 하나하나 언급하자면 너무 부끄러워 지니까
시간에 대한 태도차이만 이야기해야겠다.
그는 시간을 "자원"으로 생각했다면 난 "마음의 축적"이라 생각했다.
그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일기를 썼고 난 과거의 나까지 모두 가지려는 욕심에 일기를 쓴다.
시간을 놓치기 싫다 라는 기본적인 생각에서 그와 나의 일기가 시작되었고,
그는 시간을 놓치지 않게 시간을 발굴하고, 압축하고, 저장하고, 꺼내쓰는 비법을 터득했다면
나는 나를 기억하고 과거와 공존하고 미래를 상상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그리고 이 책은 시간 뿐만이 아니다.
학문을 대했던 그의 야심찬 마음과 부지런하고 섬세한 학자의 태도에 대해서 강조를 하고 있기도 하다.
그는 학문으로 명예나 부를 이루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의 말마따나 언제나 운이 모자라 그는 부귀영화와는 거리가 있는 삶을 살게 되었다.
그의 가족들은 그의 검소함과 고지식함으로 인해 고생을 약간 하게 되지만.
그 고생조차 마음가짐의 종잇장같은 차이인 것을 말이다.
참 닮고 싶은 사람이다. 류비셰프. 그처럼 부지런하고 검소하게 살긴 힘들겠지만.
이 책을 통화 그와 만남으로 인해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그리고 내가 써왔던 일기와 내 시간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한번 곰곰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업적과 시간에 대한 태도를 바라보노라면,
우리는 시간이 늘 없다 말하지만, 막상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갖가지 핑계를 만들기 위해 시간을 없애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 시간.
사람이 가진 건 애초에 오직 시간밖에 없었다.
시간이 금이고 시간이 없다고 모두들 말하지만
전자는 맞고 후자는 틀렸다.
우리가 가진 것은 시간밖에 없기에 시간은 그토록 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