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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든다 혹은 느낀다/책을 읽은 뒤에

[책] 한국 도시디자인 탐사

한국 도시디자인 탐사
카테고리 기술/공학
지은이 김민수 (그린비,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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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다. 도시디자인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역사와 정체성에 관해서 생각해 보게 될 줄이야.
보기좋고 편리한 것만이 디자인이 추구하는 전부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 안에 무엇을 담고 있는지에 대해서 우린 외면하고 있었다.

"생각이 에너지다" 라는 어떤 대기업의 광고문구가 있다.
외모나 학벌, 직업 등의 외적인 조건이 그 사람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든 생각이 그 사람을 결정한다.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원하는 삶 자체에 대한 의식이 없을 경우
그 사람의 인생은 하늘과 땅 차이일 것이다.
사람에 대한 나의 생각은 예전부터 그러했다.
내 생각이 틀릴수도 있겠지만, 많은 이들이 나처럼 생각을 하고 삶으로 그것을 증명하곤 했다.

공공디자인, 공공건축물, 도시디자인 이러한 것들도 사람과 같다는 생각을 전혀 하질 못했다.
디자인이라는 것은 외적인 면에만 충실하면 되는 줄로만 알았다.
단가가 저렴하고 외관상 멋진 디자인이 최상의 디자인이라고 생각했지만,
우리가 살고있는 이 곳이 아름다워지지 않는 것은 거기에 불어넣을 정신을 찾지 못해서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는 일제에 의해 근대화되었다.
참 가슴아프지만 부정할 순 없는 사실이다.
공공디자인에 관한 책을 보면서 이런 역사적 뼈저림을 다시한번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김민수교수는 우리가 겪어왔던 지난날을 잊지말 것을 이야기한다.
아팠으면 아팠던 그 모습을 기억해야만 우리의 정체성형성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서민들의 삶과 공공디자인을 밀접하게 연관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삶을 담아내지 못하는 공공디자인은 공공디자인이 아닌 정부가 돈을 대는 기업디자인일 뿐이라고 한다.
정체성.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에서 가는가. 우리 스스로 누구인가를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고 채근한다.
60~80년대식으로 단절된 역사를 껴안고 그저 밥먹고 사는데 정신없이 바쁘니 그런 쓰잘데 없는 것은 대충대충 한다나
80년대 이후 우리도 좀 잘 살게 되었으니 남보란듯 번쩍번쩍한 것들을 마구 만들어 내겠다며 공허한 공공건축물을 마구 만들어낸다.
도시의 상징도 마찬가지다. 뭣 하나 실적을 내놓아야 하니 보아서 그럴듯한 것을 좇아 자기 스스로를 잊어버리고 만다.
빨리빨리. 남이 보아서 멋지게. 이 두가지가 우리의 정체성 아닌 정체성이었을까.
김민수교수가 돌아본 우리나라 도시의 정체성은 참으로 쓸쓸하고 황량했다.

이제 발걸음을 멈추고 생각을 해 보아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조금은 늦었지만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디로 가야할지를.
그리고 그 생각들이 모아지고 단단해져서 현실적인 디자인으로 표현되어야 할 것같다.
공공디자인이 우리의 정체성을 황량하게 정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이 공공디자인을 정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의 내용과는 별도로 이런 생각도 또 들더만.
유럽. 유럽을 가보진 않았다. 사진으로는 많이 봤지만 말이다.
유럽의 도시풍경과 우리나라의 도시풍경이 가장 다른 점은 뭘까.
왜 우리는 그토록 유럽의 도시풍경을 보면서 그들을 부러워하고 아름답다고 여기는 걸까.
단지 이국적이기 때문이라 그런건가.

홍대앞 거리를 걸어본 적이 있다.
걷기에 좋은 거리도 아니고, 많이 아름다운 거리도 아니었지만 상가밀집지역 치고는 꽤나 괜찮은 경관을 스스로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건축디자인은 타지역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홍대앞 옷가게와 식당들의 간판은 알고 있었다.
간판 자체의 소임은 자기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이 분명하지만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이 오로지 튀는 것이 절대적인 수단이 아니라는 것을.
그 곳이 다른 상가와 다른 점이 딱 하나 있다면 간판들간에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는 것이다.
일부 간판을 정비한 지역처럼 획일적인 간판들은 아니었지만,
자기자신의 자태를 뽐내는 동시에 나만 살겠다고 다른 이들은 어찌하든 무조건 번쩍번쩍하게 튀는 간판은 거의 없었다.
그네들의 미적인 수준이 자연스럽게 함께 공존하는 방법과 조화에 대해서 생각하게 했던 것이 아닐까.
나 혼자 아름다워야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내가 주변과 잘 어울릴 때 더 아름답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 아닐까.
우리나라의 모든 간판하시는 분들이 그들의 센스를 좀 본받았으면 하는 바램이 들었다.

아주 작은 것이지만 그들의 간판처럼 우리나라도 조금씩 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조화로움이 은근히 멋지다는 걸.
유럽의 거리처럼 우리도 우리 스스로를 드러냄에 이웃과 조화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걸.
그것이 예의이고 멋이라는 걸 우리 스스로가 깨닫는 날이 오게될지도 모른다.

김민수 교수가 이야기했던 정체성과 내가 생각한 조화로움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내가 지금 현재 살고있는 곳. 여기 대구의 정체성은 뭘까.
그리고 우리 지역 사람들은 멋과 예의 자체가 우리의 매력이 되고 그 매력이 언젠가 우리가 사는 이 곳을
아름답게 우리스스로를 변모시킬거라는 걸 깨다는 날이 올까.

참 어려운 일이다.
김민수교수는 공무원들이 공공디자인을 결정함에 있어 좀 더 여러가지 배려를 해주기를 당부하였지만,
단지 공무원의 문제는 아니다. (내가 공무원이기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다.)
우리 안에 요구가 있어야한다.
아름다운 도시 만들기가 다 돈이 드는 휘양찬란한 작업이라는 생각을 버리는 동시에 번쩍번쩍한데 정신을 빼앗겨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의 수준을 조금은 더 높여나가야만 할 일일 것 같다.
참. 어렵고 어렵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