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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든다 혹은 느낀다/책을 읽은 뒤에

[책] 생각대로 되는 공공디자인

공공디자인
카테고리 기술/공학
지은이 양요나 (도시미래연구원,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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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양요나. 디자인.
세가지 키워드가 머릿속에 꽉 들어찬다.

핀란드라는 묘하고 매력적인 나라가 계속 눈에 들어온다.
최근 '뽐뿌'라는 커뮤니티에서 핀란드람자라는 분의 핀란드 생활수기를 본 적이 있다.
그 분이 경험한 핀란드와 디자이너 양요나가 경험한 핀란드는 비슷했다.
그래서 내 머릿속에도 비슷한 핀란드가 생겼다.
진지함. 평등함. 오래 생각하는. 진실한. 조금은 침착하고. 겨울이 길어 조금은 우울한 느낌. 그럼에도 밝은 느낌의 사람들.
스스로가 핀란드 사람이라고 여기고 싶을 만큼 핀란드 사람들은 참 매력적, 아니 진실한 것 같다.
양요나라는 디자이너는 핀란드에가서 저러한 느낌들을 하나하나 잘 관찰해서 전해주었다.
작은 표지판 하나, 건물이 만들어진 질감, 동상과 갈매기의 관계와 핀란드 사람과 이야기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을때 우리나라와 가장 비교되는 점은 진지함의 부재라고 느껴졌다.
우린 뭐가 그렇게 잘나서 늘 조소하고, 늘 비꼬고, 서로의 꼬투리를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있다.
상대방을 진지하게 들어줄만한 마음가짐이 되어있질 않다.
TV, 정치, 내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나는 성격이 참으로 진지한 편이라서 가끔 내가 여기에서 홀로 진지함에 있어 괴로움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그리고 그 괴로움은 곧 외로움으로 바뀌곤 한다.
나는 정의로운 사람이 되고싶고, 떳떳하게 살고싶다.
누가 이 글을 보고 있는 지 모르겠다만 방금 '피식'하며 웃은 사람도 있을거라고 생각된다. "정의"라니... 라면서 말이다.
핀란드에 가서 아무나 붙잡고 "정의로운 사람이 되는게 내 꿈이다" 라고 말했을 때 아무도 날 비웃지 않을 것 같다.
양요나가 핀란드 사람들에게 "디자인이 뭐라고 생각하느냐" 라고 묻고 다녔을때 그들이 진지하게 대답을 해 준것처럼 말이다.

진지함. 골똘히 생각함. 그 응축된 느낌을 솔직하게 표현함. 또 그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임.
진실과 진심의 흐름이 꼭 보일것만 같은 핀란드. 그게 핀란드에 대한 내 느낌이다.
먼 곳에 가 있는 이들이 이국적인 그곳의 모습들 중에 좋은 모습만 전해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냥 그들이. 그들의 진지함이 마냥 부럽다.
엄밀하게 말하면, 진지한 사람들이 많은 그 환경이 부럽다.
나도 내가 내 꿈을 이야기하는데에 있어 뭔지 모를 유치함과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상황이라면 그렇지 않을텐데 말이다.

그리고 양요나.
양요나가 궁금해졌다. 나쁜 여자를 그리워 하면서 그녀가 붕숭아로 물들여준 손톱을 이따금씩 보는 사람.
그리고 아마도 나처럼 조금은 외로울 사람.
일반인(여기서 일반인이란 공무원 혹은 정치인에 대비되는 의미)이면서도 "공공"이라는 말에 책임감을 느끼는 사람.
우리나라에 진지함이 부족함을 안타깝게 여기는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를 좋아하는 사람.
눈으로 보이는 모든 것을 찬찬히 관찰하며 그 느낌을 이해하고 기억하려는 사람.
작은 픽토그램 하나하나에서 거대한 문화적 맥락을 읽어낼 줄 아는 사람. 디자이너.
디자이너라는 감투가 사람을 돌변하게 하는 것을 짜증내는 사람.
디자이너도 사람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것을 보여주고 또 그것을 볼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 사람의 제자가 되고싶다고 생각했다. 아마 나보다 훨씬 더 진지하고도 밝을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디자인에 관하여.
나에게 있어서 디자인이라는 건 뭘까.
공공디자인이라는 건 또 뭐지.
끊임없는 질문들이 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닌다.
디자인. 디자인. 디자인.
마음을 좀 더 솔직하고 효과적으로 드러나게 해주는 표현방법. 내 생각에 디자인이라는 건 저렇다.
(물론 이러한 디자인에 대한 내 생각도 양요나나 김민수교수등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은 뒤에 만들어진 거겠지만;)
그리고 디자인은 철저히 기능적이어야만 한다. 그 기능 자체가 단순히 예쁨이 아닌 아름다움을 구사하여야 한다.
그건 양요나가 가르쳐 준거다.
사람의 눈은 보고싶은 것만 보는 경향이 있다. 대표적으로 내가 일할 때 문서를 읽으면 좀 그렇다 ^^; 후후후후훗.
왜 그렇게 일할 땐 내가 보고 싶은 부분만 골라골라 보이는 지 모르겠다.
그런데, 보고싶은 것만 보고 사는 건 아니다.
모든 디자인은 공공디자인이라는 양요나의 말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눈을 뜨고 감는 것은 우리의 의지로 조정할 수 있지만, 눈을 떴을 땐 보고싶은 것만 보고 살 순 없다.
온갖 지저분한 것들. 잡다한 것들을 한꺼번에 다 보게되는 것이 눈이다.
그래서 모든 디자인은 특정한 누군가만을 위한 것이 아닌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말 인 것 같다.

디자인은, 사진이기도 하면서 그림이기도 한 것 같다. 이 무슨 쌩뚱맞은 말인가 하면.
그림은 플러스, 사진은 마이너스라는 말이 있듯.
디자인은 흰 종이위에 생각을 그려나가는 풀러스의 작업이긴 하지만,
그 그림은 사진처럼 주제를 강하게 부각시키고 잡다한 것을 없애야만 한다는 마이너스의 숙명을 띄고 있기도 하다.
기능. 어떤 핀란드 사람이 했던 말. 디자인은 예술이 아니다. 디자인은 기능이다. 그 말이 계속해서 머리에 울린다.
철저히 기능적인 것을 추구하다보면 아름다움은 저절로 따라오는 것 같기도 하다.
가장 효율적인 것이 가장 아름답기 때문이다.


언젠가 핀란드에 가고 싶다.
내 생에 그런 시간적 물질적 여유가 가능할런지는 모르겠다만.
언젠 시간이 된다면 달러빚을 내서라도(?) 핀란드에 한번 가보고싶다.
그리고 거기서 그 사람들의 진지함을 만끽하고 그들과 픽토그램으로 대화하고 싶다.
참. 핀란드 바람이 송송송 불어오는 것이 봄바람난 듯 마음이 이상하게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