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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든다 혹은 느낀다/책을 읽은 뒤에

[만화] 대한민국 원주민

대한민국원주민
카테고리 만화 > 기타만화
지은이 최규석 (창비,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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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예전에 우연찮게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우리 셋째 삼촌이 숙모와 부부싸움을 했는데, 삼촌이 홧김에 우리 숙모를 때렸다고 하니 막내 삼촌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지겹지도 않던교! 우리는 그래 살지 마입시더.“ 라고.
만화가 최규석은 막내 삼촌의 소리침과 같은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만화로 풀어내고 있었다.
대한민국 원주민의 이야기는
”불행이란 놈은 친절하게도 인간의 상식을 불행 수준으로 떨어뜨려 불행을 있는 그대로 느끼지 않도록 배려해준다.“ 라고
느끼게끔 해줬던 무식하고 폭력적이었고 그다지 재미있지도 유쾌하지도 않은 씁쓸한 추억담에 관한 이야기다.
82년생인 나는 그 씁쓸한 추억에 직접적으로 공감하진 못했지만,
어렸을 적부터 숱하게 들었던 부모님의 이야기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옛날에 그 시골에서 기와집이 몇 집 없던 시절, 우리 집이 그 몇 집 중 하나였는데 할아버지가 노름을 하며 초가집으로 옮겼다는 이야기,
우리 할매가 젊었을 적에 많이 아파서 절에 열심히 다녔다는 이야기,
동생들 학교 보내느라 정작 자신을 돌보지 못한 우리 아빠의 이야기,
보릿고개니 먹을 게 없어 무를 밥에 넣어 먹었다는 이야기,
아들들 공부는 다 시켜줘도 딸은 안 시켜주더라는 이야기,
외삼촌들을 뒷바라지 하느라 도시에 가서 식모살이 아닌 식모살이를 했다는 이야기,
연애는 제대로 해봤냐는 내 질문에 그때는 그런 걸 몰랐다는 엄마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땐 그런 시절이었던 것이다.
 
그의 손에 이끌리어 이런저런 추억담을 하나둘씩 듣는 사이에,
대학교시절에 수업시간에 주워들었던 여러 가지 이론들도 함께 생각이 났다.
그는 도시와 단절되고 소득수준이 낮은 시골지역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던 터라
도회지의 70년생들과는 많이 다른 사회적 경험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도시와 시골의 문화의 차이가 너무 커서 마치 60~70년대가 함께 공존했던 것 같기도 하다.
책머리에서도 나오는 이야기지만, 농활을 가고 노동현장에서 시위를 할 정도로 애착이 있었던
우리들(도시의 70~80년대생들)이 입체적인 “개인”으로 농촌과 공장의 한 사람 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신기하고 생소한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는 급격한 문화적 차이가 있다. 
학교에서 교수님이 이런 사회를 “과도기적 사회” 라며 농경사회, 산업사회, 정보사회가 공존하는 사회라고
현재의 중국을 예로 들어 설명하셨으나 중국까지 갈 필요도 없이
대한민국 원주민이라는 책 자체가 그런 다양한 스펙트럼에서 오는 외로움을 압축해서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는 꽤나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다 이따금씩 외로워지면
이야기 속에 작은 소년인 자기 스스로를 안아주며 위로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가 들려준 많은 이야기들은 물질문명(환경)과 감수성의 상관관계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많은 이야기들 중에 가장 슬펐던 건 자식이 죽었을 때의 이야기인데,
아이가 죽었을 때의 일과 그것을 회상하는 현재의 부모님을 보면서
사람이 환경에 따라 슬픔도 극복하는 방법이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 뜨러 오는 동네 아낙들의 수다에 며칠 전에 죽은 아이 엄마의 목소리가 섞여 있었다.”
“몰라. 울었는가..”, “울긴 지랄로 울어? 그게 뭐시라꼬 울어! 또 낳으모 되지” 라고
추억되는 그 작은 죽음들은 내 마음을 짠하게 한다.
아기가 죽어도 그 죽음을 슬퍼하고 괴로워하기엔 너무도 가난해서 슬픔마저 사치스럽게 느껴졌던 게 아닐까.
물론 그 시절엔 그것마저도 인식하진 못했겠지만 말이다.
모든 이들이 그런 건 아닐지도 모르지만,
잘 살게 되고 시간적 여유가 많아지면 슬픔도 깊어지고 그 깊은 슬픔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도 생기는 건가보다.
오늘 날에는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자식 잃은 슬픔에 말이다.

그가 앞으로 태어날 그의 자식을 생각하고 그 자식이 지을 미소를 온전히 마주볼 자신이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그의 자식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타인의 물리적인 비참함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그저 보고 들어 느끼는 것이다. 다만 어린 날의 당신 스스로를 안아줬던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그때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들려준 것에 대해 감사할 뿐이다.
이런 나의 생각들이 위로가 되진 않겠지만,
나처럼 당신의 이야기를 끄덕이며 당신의 그 시절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늘어가는 것이
당신의 의도가 아닐까라는 지레짐작을 해본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이해가 차곡차곡 쌓여
당신과 우리가 서로를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날이 있기를.
그래서 당신과 당신의 누나들 그리고 우리의 엄마 아빠들이 조금은 덜 외로워 할 수 있기를 바래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