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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든다 혹은 느낀다/책을 읽은 뒤에

[책] 소파전쟁

 


소파 전쟁

저자
박혜란 지음
출판사
웅진씽크빅 | 2005-12-20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나이듦에 대하여의 작가 박혜란이 소설...
가격비교

 

 

마을 도서관에서 반가운 이름을 발견했다.

박혜란.

10년 전 예전에 이적씨 빠순일 적, 그녀의 책을 사서 읽은 적이 있다.

엄마더러 읽어보라 했지만 엄마가 잘난척 하는 거 같아 읽지도 않았다는 책.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이었다.

 

재미있었던 에피소드들도 많았지만, 참 인상적이어서 아직도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그거다.

그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바로 이적.

이적이 어렸을때, 삼형제 중에 젤 못생기고 키도 작고 외소하고 그랬다나?

여튼 그 애가 아기 스포츠단에 수영하러 다녔는데 수영이 참 재미있다고, 대회도 나간다고 했단다.

엄마는 부푼 마음에 "우리 애도 수영선수 시켜야 하는 거 아닌가?" 라고 들떠서 가봤더니

세차게 치고 잘나가는 애는 내새끼가 아닌 것 같고, 우리애가 어디있나 싶어서 눈을 씻고 찾다가

옆에 허우적거리며 둥둥 떠가던 애처로운 작은 애가 누군가 싶어서 자세히 살펴보니

웬걸. 그게 동준(이적)이였다나.

아이는 잘하는 것과 재미있는 것을 구분해가며 시달리지도 않았고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도 않았다.

그냥 재미있게 즐기고 있었을 뿐이었지. 잘 하나 못하나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거든.


수영하는게 신난다기에 수영천잰가 싶어서 들떴었다고.

막상보니 아이가 뒤쳐져서 남보기에 부끄러웠는데

뒤돌아서 곰곰히 생각보니 그렇게 생각한 스스로가 더 부끄럽더라는, 그런 고백이었지.


그런데, 그 엄마의 훌륭한 지점은 바로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넌 왜 다른 애들처럼 잘 못하니. 내가 너한테 들인 돈이 얼만데" 이따위 소린 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스스로의 부끄러움을 발견하고 고백한 것. 

그런 훌륭한 엄마가 아이를 믿고 기다려 주었기에 그 아이는 어른이 되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노래를 만드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다시 이 책 이야기로 넘어와서 


소파전쟁은 늙어가는 부부들의 이야기다.

예전에도 읽은 책이 기억난다.

정년퇴직한 남편 길들이긴가.. 뭐 그런 책이었다.

소파전쟁도 그와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다.

나이많은 남자 그리고 여자가 같이 살아가는 이야기.

 

그런데, 박혜란씨가 여성학자라 그런지 아무래도 이 책도 그렇게 보였다.

여성성? 여성학? 여성주의?

그건 별난 여자들의 별난 주장이 아니라,

지극히 합리적이고 인간적인 보편적인 우리들의 이야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참을성은 줄어든다.

젊은 시절 뭔지 모르게 억울하게 참았던 것들 이제 왜 그러고 사는 지 모르겠다 싶어

한꺼풀한꺼풀 나를 더 진하게 드러낸다.

그런 삶의 변화는 나와 같이 사는 늙은 남자와 더 잘 지내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남자와 여자는 다르면서도 또 다르지 않은데 말이다.

 

나이든 남자나 여자분들께 이 책을 권하면 정작 읽지 않으실 수 있겠지만.

난 재미있게 읽었다.

아직은 객관적으로 볼 수 있으니까.

내 노년과 우리 부모의 늙어감을.

나 또한 그렇게 늙어가고 싶고 말이다.

삶은 원래 그런거다. 

 

노인네들 이야기를 한참 읽다보니

삶의 여유가 생기는 듯한 착각마져 든다.

 

오히려 이런 책은 젊은 애들도 좀 읽어야 한다.

노인네들이 읽으면 자위가 될 뿐이겠지만,

젊은 애들이 읽으면 현명해 질 수 도 있잖아.

모두들 그렇게 사니까.

그런데 안그런 척 하려고 힘들게 사니까.

굳이 그러지 말라구.

안그런 척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