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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본진 한참 오래전인데, 오랜만에 블로그질을 하다보니 밀린 감상문을 한꺼번에 쓰게되네.
물론 영화니까 실상까지 알 순 없지만 미국에선 은행에서 대출을 승인할 때,
담보의 성격이나 그 가치보다는 사업계획의 타당성 및 비전에 관해 더 많은 비중을 두나보다.
그래서 안에게 물어봤지. 영화에선 그렇던데 실제론 전혀 그렇지 않지? 라고 하니 의외의 대답이 돌아온다.
점차 은행직원들이 대출하고자 하는 사람의 사업성을 판단하여 대출을 승인하는 문화(?)가 점차 정착하는 추세라나.
그리고 yes라 말하는 것. 그것의 의미를 다시한번 알게 해 줬달까.
무심결에 가능성을 닫아버린 수 많은 미래를 활기차고 다양하게 만드는 것.
내 인생에 그를 초대하는 것. 그것.
며칠전에 삼촌이랑 이야기를 했다.
때론 도덕과 정의도 독선이 될 수 있다는 삼촌의 의견.
그 많은 대화를 저렇게 압축해 놓으니 우리삼촌이 꽤나 나쁜 사람처럼 보여지지만 그런게 아니다.
진정한 의미의 다양성이란, 때론 악과 불의의 입장에서도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내가 그러한 선택을 해야겠다거나 하겠다는 것이 아닌, 그들을 이해하는 것.
머리로 이해가 아닌, 진정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날더러 쓰레기라고 단숨에 욕부터 해대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깨달음은 항상 내 손끝보다 한발짝 빨라서 안타깝다.
정말. 참된의미의 yes. 잠재적 가능성(잠재적 부정의, 부패, 부도덕이 아니다.)을 진심으로 열어두어야 한다.
어둠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 어둠을 밝힐 수 없다.
어둠을 밝히려면 밝음만 보고 있어선 안된다.
때론 내 등을 밝음에 맡기고 난 어둠을 향해 있어야 한다.
그 어둠까지 깨달을 때, 어둠을 빛으로 이길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