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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책 한 권을 읽질 못했다. 머리가 썩은건 아닐까 아무도 몰래 의심하곤 했지.
자본중의 역사 바로알기, 당신들의 대한민국,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개미.......
(위에 죽 늘어놓은 책들은 절대로 어려운 책들은 아니지만, 문장이 초큼 딱딱해설!!!! - 내 머리 속 뇌주름이 활짝 피었습니다)
읽다가 때려치우고 읽다가 때려치우고. 나의 지적인 능력이라는 것은 나날이 퇴화하고 있었지.
그래도 아직 여행기나 가벼운 수필은 읽어낼 수 있구나.
훗. 오랜만에 책 한권 빨리 읽었다고 지금 까불고 있는거다.
아이와 함께하는 라오스 여행기는 엄밀히 말해서 여행기라기 보다는
여행을 통해서 스스로에 대한 고찰을 나즈막히 고백하는 것처럼 들렸다.
사색을 통해서, 나를 보는 사람들을 통해서 때로는 아이를 통해서
이런저런 일들을 겪을때마다, 그녀는 순수란 무엇일까.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건 무엇일까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그녀가 알고 있었던 것은 우리가 태어날 때 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고.
마음은 노마드이나 몸은 노마드로 살지 못하는 우리들이 애써 잊고 싶어했던 것이다.
순수함과 순진함.
그런것은 배운다고 알 수 있는게 아니다.
그냥 이런저런 기회를 통해 잠깐잠깐 뒤돌아 볼 수 있는게 전부겠지만 괜히 약오른다.
참 당신은 좋겠다. 어쨌든지 몸으로 그런 순수함 느낄 수 있어서.
난 이렇게나 찌들었다. 그녀가 전해주는 순수함만으로는 감사하지 못한거지. 이 찌든 욕망이야.
나도 그 순수함 근처로 가 볼꺼다. 아마 올해 겨울에.
그래서 보게 된 책이기도 하지만, 내 여행에 어떤 변화가 생기게 될지도 모르겠다.
여행자가 가져야할 철학이라는 것은 꼭 필요하지만 꽤나 생기기 어려운 것일거 같다.
언젠가 교육과정에 "여행교양" 이런 거 따위가 생겨서 모든 이들을 계몽해야되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누군가는 이렇게 깨닫고 통찰하지만, 찌든 일정 가운데 언론이나 다른 이들이 좋다고 해서 무턱대고 따라가보는 그런 여행을 가는 사람도(나!!!!) 많을텐데
제대로 된 여행을 많이 해보지 않았지만, 여행자의 철학이라는 그 말 한마디가 내 가슴을 훅파고든다.
나는 과연 제대로된 여행을 기획하고 있는가? 그들을 해치지 않으면서 그들을 잘 보고 올 수 있을까?
여유를 가지고 오랜시간 많은 것을 생각해보고 여행을 다니는 사람과
1년에 단 5일을 붙여서 쉬는게 어려워서 짧은 시간동안 많이 보고 오려는 사람은 다를 수 밖에 없겠지만.
(물론 생활이 여행이라는 사람들이 다 부자라는 건 아니다. 여행자는 늘 가난할 수 밖에..)
여행에 대한 통찰도 여행을 가는 이유와 시간적 여유 등에 따라서 달라지는 게 아닐까 싶네.
나쁘게 말하면 시간이 많은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여유익여유, 찌듦익찌듦??? 이랄까???
여행을 다녀오면, 동료들 눈칫밥을 감사히 먹으며 선물을 한보따리 풀어놓고 다들 고생하는데
나만 놀러가서 미안하다 고맙다고 연신 고개를 숙여야 할테고. 거나하게 점심이라도 대접해야 인간취급 받을 수 있을텐데.
그런 현실을 생각하면서 라오스의 순수함을 깨닫기엔 참 사는게 팍팍하다.
그래서 저런분들이 책을 쓰고 우리가 읽는 것이겠지만.
뜯금없이 그녀의 이야기를 죽 읽다보니 예전에 동물원에 가서 느꼈던 불편함이 생각났다.
불편하기만 했던 그 기억들이.
동물원에 동물들은 멍청하기 위해서 거기에 있는게 아닐텐데,
박제나 다를 바 없는 동물들은 그저 멍청하기만 해서 슬펐다.
꼭 내가 사는 꼴이 그런 동물들 같아서. 처량하다기 보다는 참 바보같아서.
물질적인 혜택은 내가 라오인보다 훨씬 더 많이 누리고 있지만, 과연 내가 그들보다 자유롭고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순진하거나 순수하지 않지만, 멍청하다. 참. 써놓고보니 더 우울하네.
아. 나는 어떤 여행을 하게 될까.
조금 더 고민해봐야겠다. 그녀처럼 라오스를 깊게 느낄 순 없겠지만.
그래도 고민하다보면 조금 더 깊은 여행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들을 조금 더 보고 내 삶도 아주 조금은 변할 수 있기를.